친구 수진이

사각프레임 2011. 2. 9. 23:51


2009년 홍대.


내 친구 수진이를 처음 만난 건 2002년 2월 신입생 교내 OT 때였다.
교외 OT를 가냐고 물어오던 수진이. 낯선 서울 여자아이가 나에게 뭘 물어보다니. 
순간 당황했다가 나는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더니, 처음 본 그 아이가 아쉬운 표정으로 나에게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 때는 지금 이렇게 수진이와 친한 친구사이가 될 줄은 몰랐다. 
우리과 1학년 100명 중에 여학생은 8명 내외. 4년 뒤 졸업할 땐 여학생이 5명이었던가..
암튼, 신입생 중 여학생의 비율이 약 8% 인데 그 중에서 수진이와 난 단짝이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옷 입는 스타일도, 화장을 하느냐 마느냐, 말하는 스타일, 공부하는 스타일, 입맛, 이상형, 좋아하는 색깔 등등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우리 둘은 너무나도 정 반대였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진이와 나는 단짝이 된 것이다. 
음과 양의 조화도 아닌 것이,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 찬반토론을 벌이고, 마치 톰과 제리처럼,
같이 밥을 먹으면 양쪽이 만족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2010년 가을 임진각.



이성 친구와는 또다른 느낌이랄까.
만난지 얼마 안되어서도 우리는 알고 지낸지 10년이나 된 친구마냥 친해졌다.
가족 친지들만 아는 집안 이야기부터
과거 연애경험에서 얻은 상처들, 현재의 고민거리, 앞으로의 진로, 시험기간 직후의 서로의 성적, 사소한 물건 고르기도
대부분은 보통의 여자 친구들과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수진이와는 거리낌없었고 좀 더 깊은 공감을 얻었고 객관적인 비판을 받을 수 있었다. 

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냉정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걸지도.

사귀는 사람이 있어도 황금같은 주말에 수진이를 만나고
집안문제가 생겨서 골치가 아플때면 수진이를 만나고
부끄러워서 포털사이트 지식인에게조차 물어볼 수 없는 궁금증이 생기면 수진이를 만나고
별일 없어도 어김없이 수진이를 만났다. 




2010년 가을 임진각.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라고 했던가.

정이 많아서 
둘이 만나 밥을 먹고 헤어져 집에 가는 길에 쉽사리 한 번에 돌아서지 못하는 수진이는 
지하철 계단을 하나씩 천천히 내려가면서 서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가끔 독설을 내뿜는 나에게 온갖 질책을 하는 수진이는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손짓, 무심한 눈길, 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놓아둔 물건 하나에도 
상처받고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다. 

뒷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 아이. 
근데 그 뒷모습이 너무나도 여린데 내 눈엔 다 보이는데
그렇지 않은척 애쓰는 마냥 씩씩하지만은 않은 약한 친구다. 

수진이가 인도에 가서 마음을 비우는 도중에 나에게 보내준 쪽지에 적힌 말 한 마디로 인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혀버리기도 했다.



2009년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수진이를 알 정도로
이제는 내 삶에 있어서 수진이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30살이 훌쩍 넘어서 둘 다 결혼을 안하면 같이 살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수진이는 외국으로 이민을 갈거란다. ^^

수진아, 보고싶다..!
보고싶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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