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때 못했던 지리산 종주.
2박 3일 비박하며 하루종일 걷고 또 걸었다.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부드러운 엄마품같은 등산로와, 사진으로는 표현이 안되는 경치들,,
남한육지에서 하늘아래 가장 높은 천왕봉까지...
그곳에서 바라본 떠오르는 태양과 열의에 찬 사람들은
평생 잊지 못할 벅찬 감동이다.
성삼재 - 노고단 - 임걸령 - 노루목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총각샘 - 연하천대피소
- 형제봉 - 전망바위 - 벽소령 - 선비샘 -칠선봉 - 세석평전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치밭목대피소 - 대원사
거리 총 35km
퇴근 후 미리 싸둔 배낭을 메고 후다닥 용산역으로 가서
밤 11시가 다되어서 구례구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열차안에는 온통 크고작은 배낭을 멘 등산객들뿐.
지리산행 열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녁으로 김밥이랑 호도과자를 먹고 옷을 덮어쓰고 잠들려고 노력해봤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모두들 나처럼 들떠있나보다.
그렇게 4시간정도 기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시간은 새벽 3시 반.
택시를 잡는 사람들과, 일행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시장바닥이 따로없네..
이거 분명 구례구역인데....ㅎㅎ
구례구역에 내리니 택시가 뭐그리 많은지....
이지역 택시들에겐 '지리산 특수'인듯했다.
나도 물론 성삼재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트렁크엔 하나같이 벨트나 끈이 달려있어서 큰 박배낭도 척척 실을 수 있었다. 물론 트렁크는 연채로 달렸고..ㅋ
성삼재 입구부터 걷기시작해서 관리사무소를 지나고
잘 닦여져있는 컴컴한 숲길을 랜턴불을 켜고 간다.
잠깐 쉬며 하늘을 보니
그야말로 별이 머리위로 쏟아내린다.
여기가 천국이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고 잠깐 눈을 붙였다.
기차에서 전혀 못잔 탓인지 정말 꿀맛같은 잠이었다.
눈뜨고보니 사람들은 모두 출발했고 해는 중천...ㅋ
하늘이 정말 파랬다.
노고단 대피소의 할머니도 찍고...ㅋ
노고단 올라가는 길
대피소 내부도 구경하고...
진짜 곰이 있었다는 흔적도 보고..
천왕봉이 25.9키로 남았다고 한다.
내 두 발로 오긴 왔지만
'저길 어떻게 가지?'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노고단 찍고~
임걸령을 향해 간다.
가다보니 이 꽃이 지천으로 널려있던데 이름을 모르겠는....
곧바로 사진찍어서 아빠한테 전송했다.
아빠가 알려주신바로는
'투구꽃'이라고 하셨다.
투구모양이라서 투구꽃^^
아빠는 야생화매니아~~
길이 너무 부드러웠다.
지리산은 엄마품이라더니...
경치는 백만불짜리고, 등산로엔 주단을 깔아놓은듯했다.
가을을 알리는 갈대
피아골 삼거리에서 한번 찍고~
임걸령, 노루목을 지나 삼도봉 도착
또 걷고 걷는다.
나와의 싸움이라기보단
내 자신만을 위한.
노고단 대피소에서 잠을 자고 출발해서인지
해가 지려고 할 때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은 벽소령에서 자려고 했는데
언제 뭐 계획한대로 척척 되는법은 없으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비박을 위해 자리를 잡았다.
나도 눈치를 보다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일단 침낭을 폈다.
10월 초이긴 하지만
해가 지는 지리산의 가을은 그냥 겨울이었다.
덜덜 떨며 밥을 해먹고
얼른 침낭속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건 뭐 거지소굴(?)이 따로없네..^^
근데 그 풍경이 밉지가 않고 너무 정겨웠다.
모두들 지리산 하나만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을테니까...
아침을 든든히 먹고 짐을 꾸리고 다시 출발이다.
어제 못간만큼 오늘 더 열심히 걸어야한다..
중간 중간 계속 곰을 조심하고 마주치면 어떻게해라...그런 푯말을 보게 되니
이거이거
진짜 지리산반달곰 만나는거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ㅋ
드디어 벽소령대피소 도착.
밥을 조금 먹고 곧바로 세석을 향해 가기로 했다.
이제 천왕봉까지 11.4키로 남았다!!!
난 확실히 더위를 많이 타는지,
어떤사람은 패딩을 입고 가던데
난 천왕봉 바로 밑까지 반팔을 입고 계속 걸었다. ㅋㅋㅋ
선비샘에서도 꿀맛인 저 샘물에 세수하고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밀려왔다. ^^
천왕봉까지 이제 7.8키로!!
▽왼쪽에서 두번째, 제일 뵤족한 봉우리가 천왕봉이다.
부드러운 능선길...
앞이 탁 트여 경치가 끝내주는 영신봉
비박꾼들이 '비박금지'라는 말은 한번씩 훑고 지나갔나보다...ㅋㅋ
드디어 세석평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석대피소를 지나고
두번째 밤을 맞이할 장터목대피소를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어느새 세석대피소가 작게 보이고
저 멀리 천왕봉도 가시거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사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온도 점점 떨어지고..
이제 800미터만 가면 장터목대피소
벌써 자리가 꽉찼다.
잠자리를 못찾으면 큰일인데.....
바람이 너무 불고 천왕봉 전 마지막 대피소라 그런지 사람들이 진짜 많았다.
화장실앞에선 도저히 잘수가 없어서
무작정 올라가보기로 했다.
대피소에서 떨어져서 조금 올라가다보니
거짓말처럼 바람도 안부는 나즈막한 비박지를 발견했다.
아싸!!
얼른 배낭을 내려놓고 침낭을 펼쳤다.
밥을 후딱 먹고 일찍 잠을 청했다.
미리 알아본바로는 해돋이가 6시 30분쯤이라고 해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올라가기로 계획했다.
장터목 대피소쪽엔 너무 시끄러웠는데
침낭을 펼친 비박지엔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간간히 들리고
침낭속에 누워 어두운 하늘을 보니
별밖에 보이지않았다.
머리위의 반짝이는 별들과
일어나서 보게 될 천왕봉의 일출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나도 벅차올랐다.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데..
우리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덕을 많이 쌓으셨는데...
미리 맞춰둔 알람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잠을 깼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통속의 물을 한모금 마시고
초코바 하나 물고 곧바로 배낭을 꾸려서 컴컴한 등산로를 걷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따라 오는 사람들의 랜턴이 줄을 지어서
마치 어디 순례라도 하는 무리같이 느껴졌다.
오르락 내리락 바위길을 한참을 가다보니
드디어 천왕봉이다.
일찌감치 일어난 덕분인지
일출을 보기에 안성맞춤인 자리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있었다.
자리를 잡고, 카메라도 잡고, 일출만을 기다려본다.
드디어 동이 터온다.
나도 나지만,
이사람들도 대단하다...^^
해가 이미 떠올랐지만
구름이 너무 많아서 붉고 동그란 해를 정면으로 보진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덕을 덜쌓아서 그런것같다....ㅠㅠ
동그란 해는 못봤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가장 높다는 히말라야는 아직 못가봤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내가 있다니...^^
그럼 인증샷을 찍어야 되는데....
이거 찍는데도 30분을 비집고 들어간것같다 ㅠㅠ
완전 난리도 아니다 ㅠㅠ
드디어 얼굴만 빼꼼 내밀고...^^
굽이 굽이 산들이 내려다보인다..
이제 일출도 봤으니
대원사를 향해 걸어간다.
11.7키로 ㅠㅠ
경치가 또 끝내주는 써리봉!!
끝까지 화이팅!!
지리산아~~ 안녕~~~~
마지막 산장인 치밭목산장.
아늑하게 보듬어 준다.
산행 내내 너무나 많이 먹어치운 백도 및 황도 캔 ㅋㅋㅋ
야생동물 보호해야지...
근데 쓰레기 버린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 정말 미친듯이 내려왔다.
2박3일 내내 안아프던 발목이
치밭목대피소를 지나오면서 너무나도 아팠다.
다들 얘기했듯이
대원사로 내려오는길은 너무나도 지루하고 길고 힘들었다.
쩔뚝거리며 6키로 이상을 걸어내려오니
드디어 민가가 보인다.
내가 마치 무장공비였다가 하산한것마냥
민가에 있는 내자신이 어색했다 ㅋㅋㅋㅋㅋ
그래도 새재마을로 안내려온게 다행;;;
저 멀리 남원아래 구례에서 시작한 산행이 산청에 와서 끝이 났다.
그렇게도 보고싶었던 대원사^^
걸어내려오는데 인심좋은 아저씨가 걸어가면 한참걸린다고 차도 태워주셨다.
처음엔 인신매매라도 하는거 아닌가 해서 엄청 경계하며 일행과 함께 탔는데
너무 인심좋으셨다 ㅠ 오해해서 죄송~
대원사 주차장에서 진주터미널로,
진주터미널에서 표구하기 전쟁을 치른 뒤 서울로 왔다.
2박 3일동안 나랑 함께한 내 박배낭...
또 가고싶다. 지리산.